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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0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영화 추천

by 나혼산밍키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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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518.org/

 

5·18기념재단

5월 18일을 유엔(UN)지정 세계 군사주의와 권위주의 방지의 날로

www.518.org

518 민주화 운동이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하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사람들은 오랜 독재정권의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10.26 사태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갈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지만 전두환을 중심으로 조직된 신군부 세력이 12월 12일 정권을 장악합니다. 결국 사람만 바뀐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신군부는 10.26 사태와 12.12사태를 숨기기 위해 언론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군대의 권한이 막강해지는 비상계엄을 선언하게 됩니다. 참고로 박정희 대통령도 비상계엄 선포 후 유신 헌법을 통과시켰던 이력이 있습니다. 1980년 3월 지식인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상계엄 해제와 신군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됩니다. 그 규모는 무려 15만 명,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 시위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10.26 사태로 시작된 일명 서울의 봄은 정점을 찍게 됩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확인한 신군부는 시위대에게 위협을 가하게 됩니다. 이를 듣게 된 시위 지도부(서울 소재 대학교 총학생회장 16명)는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스스로 시위대를 해체하기로 결정합니다. 자신감을 얻은 신군부는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통해 계엄사령부가 법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도록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주요 정치인 26명과 학생회 간부들, 그리고 영향력 있는 인물들 약 600여 명을 하룻밤에 체포 및 감금해 버리고 국가를 장악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체포를 피한 학생회 간부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광주 전남대 소속 학생회 간부들입니다. 이들은 미리 공유해 두었던 규칙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휴교령이 떨어지는 날이 바로 곧 우리가 모이는 날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휴교령이 떨어지고 전남대 학생들은 학교 앞광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학교를 점령 중이던 군인들 앞에서 그들은 다시 시위를 했습니다. 초기에 이들을 진압해야 전국적인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신군부는 공수부대에게 강도 높은 진압을 지시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폭행을 말리는 무고한 시민들, 부상자를 싣고 가는 택시운전사들까지 휘말리고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던 중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사망자는 청각장애인 김경철 씨였습니다.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구타를 당해 죽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신의 이웃, 가족, 친구들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걸 보자 시민들은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시위 규모에 가담하기 시작했습니다. 규모가 커지는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계엄군은 결국 총을 사용하게 됩니다. 5월 19일 오후 4시 50분 발포한 총에 사망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시위대는 더욱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계엄군도 최초의 집단 사격을 계획하게 됩니다. 5월 21일 오후 1시 전라남도청 앞에서 군인들과 대치한 시민들은 군의 사과와 시민의 명예 회복이 이루어진다면 타협할 수 있다라며 손을 내밀지만 애국가를 부르던 시민들에게 조준사격을 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죽은 사람은 60여 명이고 이뿐만 아니라 버스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 17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더욱 분노한 시민들은 경찰서, 예비군 훈련소 등에서 총을 가져와 최초의 시민군을 결성하게 됩니다. 5월 21일 오후 5시 시민군은 계엄군과 맞서 싸워 계엄군을 후퇴시키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후퇴한 계엄군은 광주로 오는 모든 길목을 차단해 광주를 고립시키고 맙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퍼트립니다. 광주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질서를 확립하고 무기도 회수했습니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워 진압작전을 시행하고 시민군이 주둔해 있는 도청 앞을 포위해 항복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시민군은 항복하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계엄군은 공수부대를 도청 안으로 투입시켜 도청 내 시민군을 무차별하게 죽이고 맙니다. 결국 계엄군은 진압에 성공하여 도청 점령으로 작전은 종료됩니다.


화려한 휴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택시기사 민우와 진우가 있었습니다. 진우는 같은 성당에 다니는 신애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518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5월 18일부터 열흘간 도청에서 계엄군과 맞서는 광주시민들의 사연에 귀 기울인 영화입니다. 택시운전사, 간호사, 고등학생, 선생님, 신부님 등 평범한 광주 시민들이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며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꽃잎

꽃잎은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피해자 유족의 아픔을 담아낸 영화입니다. 광주에서 엄마를 잃은 소녀의 피폐한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2017년에 개봉한 영화로 1980년 5월에 택시운전사 만섭이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광주게 가게 됩니다. 통금 전에 돌아오면 10만 원의 거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를 태우고 영문도 모른 채 운전대를 잡습니다. 그러나 도착한 광주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실존 인물을 다룬 이야기로 유일하게 광주를 취재해 전 세계에 5.18의 실상을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그리고 평범한 소시민이자 힌츠페터에게 익명의 존재로 남은 김사복 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다루고 있습니다. 


변호인

가난한 변호사가 단골 국밥집주인 아주머니의 간절한 부탁에 휘말리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부산의 학림 사건으로 제5 공화국 군사정권 초기에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때를 그리고 있습니다.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들을 빨갱이라 여겨 체포한 뒤 불법감금과 고문을 자행하여 죄를 날조한 사건입니다. 모두가 변호를 기피한 이 사건을 당시 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님이 맡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1987

데모를 하다 붙잡히 대학생이 경찰 조사를 받다가 목숨을 잃은 사건을 모티브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바로 박종철 열사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권력으로 사건을 축소시켜 은폐하려 하고 부조리한 협박과 억압 속에서 공안부장인 최검사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주인공은 1980년대 당시 군인으로 광주에 내려가 많은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시체를 유기한 인물입니다.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먼저  피해자와 희생자를 찾아가 자신이 저질렀던 일에 대해 잘못을 구하고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반성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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